이바노프란키우스크 (Ivano-Frankivsk)
이바노프란키우스크는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의 주도로, 주의 면적은 83.73km2, 인구는 222,000명(2009년 기준)이다.
옛 이름은 스타니스와부프이며, 1662년에 폴란드의 헤트만이었던 스타니스와프 포토츠키(Stanisław "Rewera" Potocki)의 이름을 따 건설되었다(그러나 그의 손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도 있다).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이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편입되면서 철자법이 독일어식인 슈타니슬라우(Stanislau)로 바뀌었다. 그러나 1848년 혁명 이후 도시의 이름은 3개 국어로 표기되었다. 당시의 현지 매체에서는 러시아어와 이디시어도 사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가 되면서 스타니스와부프(Stanisławów)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영토가 되면서 스타니슬라프로 불리다가 1962년 11월 9일부터 우크라이나의 작가 이반 프란코의 이름을 따서 현재에 이른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프라니크(Franyk)로 줄여 부른다.
옛 이름은 스타니스와부프이며, 1662년에 폴란드의 헤트만이었던 스타니스와프 포토츠키(Stanisław "Rewera" Potocki)의 이름을 따 건설되었다(그러나 그의 손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도 있다).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이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편입되면서 철자법이 독일어식인 슈타니슬라우(Stanislau)로 바뀌었다. 그러나 1848년 혁명 이후 도시의 이름은 3개 국어로 표기되었다. 당시의 현지 매체에서는 러시아어와 이디시어도 사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가 되면서 스타니스와부프(Stanisławów)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영토가 되면서 스타니슬라프로 불리다가 1962년 11월 9일부터 우크라이나의 작가 이반 프란코의 이름을 따서 현재에 이른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프라니크(Franyk)로 줄여 부른다.
지도 - 이바노프란키우스크 (Ivano-Frankivsk)
지도
나라 -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국기 |
중세 초 루스 카간국으로부터 키예프 루스로 이어진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투르크족·몽골족 등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대다수 우크라이나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통합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통제 아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 후 혼란과 끊임 없는 전쟁 속에서 여러 차례 독립을 시도하여 1917년에 민족국가를 건설했으나, 1922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합병되었다. 1923년 소비에트 연방 헌법 적용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이름의 구성국으로 존재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
UAH | 우크라이나 흐리우냐 (Ukrainian hryvnia) | â‚´ | 2 |